자칫 자전거 단독 사망 사고로 묻힐 뻔한 교통사고가 피해자 전화에 연락처를 남겨둔 택시 승객과 경찰의 꼼꼼한 수사로 실체를 드러냈다.
16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교통조사계 3팀은 지난 13일 ‘자전거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밝혀달라’는 신고를 받았다.
“지난달 24일 출근시간대 A(85)씨가 광주 북구 운암동 모 사거리에서 자전거를 몰다 넘어져 병원 치료를 받다 지난 13일 숨졌다”는 신고였다.
A씨 유족은 A씨 사인이 ‘외상성 다발성 늑골 골절상에 따른 폐 손상’으로 추정된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단독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A씨가 통원·입원 치료를 받았던 정형외과·대학병원 진료 기록부에 ‘단독 사고’로 기록된 점, A씨가 가족들에게도 “홀로 넘어졌다”며 사고 시점·장소를 정확히 말해주지 못한 점 등으로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CCTV 영상을 살피고 사고 장소 주변을 탐문했지만, 실제 사고 장소와 시점을 특정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A씨의 행적을 밝히기 위해 주거지 일대와 금융기관 등을 돌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던 중 장례식장에서 A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통신 내역을 살피던 조사관의 눈이 번뜩였다.
‘교통사고 000’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찾은 것. 곧장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다. 고교 1학년생 B(17)군은 지난달 17일 오전 8시께 운암동 한 고교 앞 일방통행로에서 자신이 하차 도중 택시 뒷문으로 A씨의 자전거를 충격했다고 털어놨다.
B군이 등굣길에 앱으로 택시를 부른 덕에 경찰은 기사 C(63)씨의 인적사항도 확인했다.
C씨는 사고 직후 B군과 함께 A씨를 부축한 뒤 치료비 3만원을 줬다. 이후 연락처를 교환하고 자리를 뜬 뒤 다음 날 전화해 A씨 건강을 살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주변을 살피지 않고 승객을 내려줬다가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C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A씨 유족은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 사실을 모른 채 장례를 치를 뻔 했다”며 경찰에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치매가 있는 부인과 가정을 꾸렸던 A씨는 사고 직후 일주일 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다. 통원 치료 중 심한 통증으로 지난달 29일 딸에게 전화해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B군이 개문사고로 부상을 입은 A씨에게 ‘죄송하다’며 연락처를 저장해둔 덕분에 정확한 경위를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도로교통법상 운전자는 안전을 확인하지 않고 차의 문을 열거나 내려서는 안 되고, 동승자가 교통 위험을 일으키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점과 신고·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배경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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